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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귀원 교수님께서 경향신문 여의열전 시리즈 첫 주인공으로 선정되셨습니다.
작성자 김경운 등록일 2013-09-03 조회 161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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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향신문에서 뛰어난 여성 의사들을 선정해 소개하는 ‘여의열전 시리즈’ 첫회 주인공으로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박귀원 교수님이 선정돼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. 기사를 첨부합니다 ^^

 

[여의열전](1) 박귀원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교수

 

ㆍ선천성 기형 등 고난도의 소아 수술 3만건 ‘기네스북 감’

서울대병원 소아외과 박귀원 교수(64)를 지난달 22일 만났다. 전날 밤새 눈이 내렸지만 이날은 금세 녹아버릴 것처럼 날씨가 화창했다. 박 교수는 갑자기 잡힌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. 소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수술이 잘 됐다고 귀띔했다. 박 교수는 경향신문이 새로 연재를 시작한 ‘여의열전’의 1호 인사다. 남녀 차별이 점차 사라지는 게 사회적 추세이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는 수많은 여성들의 선구적 활동이 있었다. 의학 분야도 다르지 않다. 박 교수는 흔치 않은 여성 외과의사로 수술과 연구활동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쌓아 해당 분야에서 1인자 대접을 받고 있다.

박 교수가 이날 수술한 환자는 담도폐색증을 앓던 생후 2개월(63일)된 아기.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연간 수술이 10~15건에 그칠 정도로 흔치 않은 병이다. 제때 치료를 안 하면 간경화가 진행되고 간이 망가져 결국 이식받아야 한다. 몸에 들어간 음식물에 담즙이 섞이지 않아 두부 같은 흰색 대변을 보고, 황달 현상 및 그 수치가 높고, 초음파 진단에서 담낭이 거의 안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. 수술로 담도를 열어줘야 하며, 2~3시간은 걸린다.

“담도폐색증은 태아 때부터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. 2개월 안에 수술을 해줘야 결과가 좋아요. 시간이 지나면 수술을 해도 잘 회복이 안 됩니다. 아이들에겐 큰 수술에 속하죠.”

박 교수는 지난 40여년간 이렇게 아이 수술만 3만여건을 시행, 한국 외과학 분야의 대표 여의사로 꼽힌다. 최근에는 연간 600건 정도, 전성기에는 1000건 이상, 가장 많을 땐 1200건을 넘기도 했다.

“어떤 날은 하루에 8건의 수술을 하고 파김치가 된 적도 있어요. 소아탈장(서혜부 탈장 등), 선천성 항문폐색, 장폐색, 장 신경이 없어 대변을 못보는 질환, 각종 소아 간암, 악성 부신암, 양성·악성 종양, 기형종 등등 종류도 많아요. 아이들은 수술을 받고 나서 회복이 아주 빨라 의료진을 기쁘게 합니다.”

박 교수는 외과 여의사로서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데 일익을 담당해 온 지난 인생을 비교적 명료하게, 때론 추억에 잠기 듯 반추해 나갔다.

“1972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그해 3월 서울대병원 인턴 때부터 수술에 (보조로) 참가했어요. 레지던트 1년차(73년) 때 맹장 수술 ‘초(初) 집도식’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납니다. 초 집도식에는 교수님이 조수를 서는데, 최국진 교수께서 조수가 되셨어요. 수술 중 맹장이 터지고 난리(?)가 나서 당황하며 최 교수님을 바라보니 ‘나는 조수니, 알아서 하라’는 눈치예요. 속으로 떨렸는데, 안 떠는 척하며 수술을 마쳤죠.” 박 교수는 넷째 딸이다. 부친은 대장항문 분야의 개척자인 박길수 교수(서울대 의대)다. 큰 언니는 고려대 의대, 둘째 언니는 서울대 치대, 셋째 언니는 서울대 의대를 나왔다. 집안 식구가 다 의료계로 나갔는데, 박 교수는 정작 의대에 갈 마음이 없었다. 법대에 가고 싶었다. 하지만 아버지가 학비를 안 대주겠다고 해서 결국 의대에 입학했다. 본과 1학년 때까지는 후회를 했다고 한다. 그런데 2~3학년 때 임상을 하다 보니 ‘남을 위해 기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’는 보람이 생겼다는 것이다.

외과를 지망할 때도 난관이 적지 않았다. 서울대병원 위원회에서 까다로운 심사를 했고, 특히 외과 과장(진병호 교수)과 의국장(김진복 교수)의 도장을 받아야 하는 데, 모두가 만류했다. 부친은 더 심했다. ‘누가 여자에게 수술을 받겠는가? 당직실 숙박이 가능하겠느냐’ 등등이 이유였다. 산부인과 의사인 어머니는 “산부인과도 외과분야니 산부인과가 어떻겠느냐”는 중재안을 내기도 했다. 하지만 아무도 박 교수의 ‘외과 일념’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.

“저 이전에는 서울대병원 외과에 여의사가 한 명도 없었어요. 그러니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셨겠죠. 그러나 여자가 외과를 못할 이유가 있나요?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의사라는 이유로 (담당의사를) 바꿔달라는 환자는 한 명도 없었던 거 같아요. 환자에게 ‘여자가 수술하는 게 겁 안나느냐’고 하면 ‘바느질을 더 잘하지 않느냐’는 말이 돌아올 정도였다니까요. 힘들 때가 많았지만 1년 위인 김성덕 교수(마취통증의학과·현 중앙대의료원장) 등 선배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됐어요.”

흔히 메디컬 드라마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힘겨운 수련과정을 마치고 박 교수는 1977년 외과 전문의를 땄다. 사상 최초로 부녀 칼잡이(외과의사)가 탄생하는 순간이다. 처음에는 원자력병원에서 근무하다 79년에 서울대병원에 소아외과가 생기면서 전임의로 부임했다. 이듬해 교수요원이 된 후 연애나 결혼도 ‘반납’하고 대학병원 교수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연구에 몰두하며 수술실과 병실에서 어린 환자들과 동고동락한 지 30년이 넘는다.

그가 달성한 의사 개인의 3만건 수술은 기네스북 감이다. 연구 논문도 300여편이다. 대한소아외과학회 회장,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등 학계 및 여의계의 중심 역할도 맡았다.

박 교수는 “과거에는 부모가 잘 몰라도 할머니, 삼촌, 이모, 동네 사람 등 주변에서 ‘쟤 좀 이상하다’고 해서 병을 발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, 요즘은 이웃뿐 아니라 가족과의 교류도 줄다 보니 조기발견이 더 늦어진다”면서 “소아과에 정기적으로 예방접종을 받으러 갔을 때 예방주사만 달랑 맞고 돌아가지 말고, 아이의 발육 상태를 의사에게 자세히 얘기하면서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”고 조언했다.

정년을 1년 남짓 남겨놓고 있는 박 교수는 “저보다 앞선 여의사 선배들이 잘했기에 여의사의 입지가 넓어지고 국민의 호감도가 높아진 것”이라며 “외과를 택해 보람도 많이 느꼈고, 속상한 일도 있었지만 생명이 위급한 사람들, 특히 어린아이들을 고쳐주고 살렸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자부심”이라고 말했다.

◆병원장·의료 전문가 등 추천과 자문 거쳐 선정

“무엇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해야 올인할 수 있다. 그리고 항상 최선을 다하자.” 경향신문이 새로 시작한 ‘여의열전’의 첫회를 장식한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박귀원 교수가 좌우명처럼 갖고 있는 말이다.

이 시리즈는 국민건강과 의학발전을 위해 교육·연구·진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여의사들을 매주 만나본다. 대상자는 전국 50여개 대학병원의 원장과 의료원장·학장, 그리고 원로 여의사, 의료 전문가 등 60여명의 복수 추천을 집계하고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선정했다.

최근 외과, 신경외과, 정형외과, 흉부외과, 비뇨기과 등 남성이 주도하던 영역에 진출하는 여의사도 상당하다. 하지만 박 교수가 외과를 지망한 1970년대 초만 해도 외과(일반외과)는 물론 외과 분야에도 여의사는 매우 드물었다. 국가중앙병원에서 ‘여성 외과의사 1호’가 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‘여의계 외과학 분야 개척’의 공로를 돌리는 첫번째 이유가 된다.

소아외과학 분야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환자가 흉부와 복부의 선천성 기형이다. 단 한번의 수술로 완벽한 교정을 이뤄야 하는 고난도의 수술이 필요하다. 박 교수는 연간 100례 이상, 20여년간 쌓은 선천성 기형 수술의 임상 경험을 70여편의 국내외 논문에 담아냈다. 소아외과 분야에서 질적·양적으로 진정한 1인자라는 얘기다.

하루 7~8시간의 수술 후에도 항상 밝고 소탈한 모습으로 소아 환자들과 잘 놀아주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도 정평이 나 있다.



 

경향신문 박효순 기자 2013-03-07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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